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을지로입구역|남포면옥]정통냉면, 고기국물일까? 동치미국일까?

정동인 2009. 6. 8. 16:11

참 아름답다. 입보다 먼저 눈이 즐겁다. 차분하고 은은한 빛깔의 육수. 단아한 맵시가 돋보이는 면과 꾸미. 냉면을 담고 있는 하얀 사기대접은 눈 내리는 겨울에 제격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한 마디로 조화롭다고밖에. 소박한 듯 정갈하고 정갈한 듯 품격 있는 남포면옥의 동치미냉면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남포면옥의 냉면, 손님이 많은 여름철엔 스테인리스 대접으로 대체 되는 것 같다.

고로 겨울철에 먹어야 조금이라도 더 품격있는 식기에 담긴 냉면을 맛 볼 수 있다.

 

 

서울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좌회전 후 약국 골목으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남포면옥. 이곳은 실향민에게는 향수를, 남쪽 사람에게는 미식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냉면명가이다.

 

 

 남포면옥 외관

 

 

남포면옥의 바깥과 안은 사뭇 다르다. 시간에 좇긴 현대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골목. 그대가 그 골목에 서 있다면 남포면옥의 문을 여시라. 순간 잃었던 여유를 되찾게 될지도 모른다. 고향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건 이집의 실내장식이 경쟁과는 거리가 먼 과거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정겨운 실내장식은 인위적인 손길보다 시간에 의해 다듬어져 왔다

 

 

그렇다고 촌스럽진 않다. 그건 인위적인 손길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낸 공간이기 때문일 터. 때문에 현대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이곳에서 현대인은 어복쟁반에 둘러앉아 술잔을 나누며 혹은 냉면을 먹으면서 그 순간만큼은 지친 삶을 잊는다.

 

 

 

부재료를 최대한 절제 해 깔끔하게 담근 섞박지

 

 

동치미

 

 

자리에 앉고 냉면을 청했다. 뽀얀 동치미국물부터 내온다. 남도 동치미처럼 오래 삭혀 풍미 있는 맛은 아니다. 일반 고깃집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위적인 맛도 아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시간이란 양념이 가미된 맛. 첫맛은 순하고 혀에 남는 건 산미와 감미. 동치미는 이 집 냉면의 맛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냉면

 

 

앞서 표현대로 시각미가 가득 담겨있는 냉면이 차려졌다. 눈으로 즐긴다는 일본음식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그윽한 색상은 화려함이 대수냐 싶다. 묵직한 사기대접을 들고 육수부터 음미한다. 풍부한 자연미. 동치미 특유의 감미로움은 우래옥의 육향 가득한 냉면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어쨌든 이 맛을 두고서 연기자 최불암은 ‘우리들의 향수’ 라고 했다.

 

 

 아름답다. 눈으로 먼저 즐긴다

 

 

꾸미를 살짝 걷어낸 후 육수에 섬처럼 떠있는 국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휘이 저어서 육수에 말아먹지 않은 이유는 메밀의 풍미를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함이다. 이 같은 방식은 냉모밀을 먹을 때도 적용된다. 모밀국수를 장국에 푹 담가 먹지 아니하고 절반만 담가서 먹는다. 부족한 맛은 장국을 마시면 된다.

 

냉면도 마찬가지. 입에 대는 순간 메밀의 풍미가 느껴지나 싶더니 비강을 통해 빠져 나가면서 절정을 이룬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육수를 들이킨다. 냉면의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너희가 정통평양냉면을 아느냐?

 

근래 들어 ‘냉면마니아’ 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평양냉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들에 의해 냉면명가 4대천왕이 선정되기도 한다. 저마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업소를 정통평양냉면집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외 집의 냉면은 정통이 아니라는 말일까?

 

어떤 이는 남포면옥의 동치미냉면에 대해서 정통 평양냉면과는 또 다른 맛이죠. 라고 단정 짓기까지 한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냉면마니아 연령대라고 해봤자 2~30대 잘 쳐줘야 40대 전 후반이다. 그런 그들이 어디서 정통평양냉면을 맛보고 하는 소린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아니라면 공부라도 했던 걸까? 흔히 많은 사람들이 정통냉면으로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을 꼽는다. 그 이유란 게 고기국물을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통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냉면 국물을 내는데 고기가 주냐? 동치미가 주냐를 따져보는 수밖에. 그보다 먼저 동치미와 메밀의 음식궁합을 따져보는 게 순서일 듯 싶다.

 

그 성질은 평하고 냉하며, 맛은 달고 독성이 없어 내장을 튼튼하게 한다. 또 메밀가루 껍질에는 약간의 독성(살리실아민과 벤질아민)을 가진 성분이 있어 사람에게 조금 유해하며, 이런 성분을 제독시켜 주는 가장 좋은 것이 ‘무’이다. 따라서 메밀을 무와 함께 먹어서 소화를 돕고 장의 독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동의보감)

 

선인들은 음식 하나에도 궁합을 따져가며 만들었다. 메밀을 동치미국물에 만 이유도 음식궁합에 의한 결과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여유 있는 집안은 고기육수를 없는 집안은 동치미국물에 말았다는 일부 블로거의 견해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

 

오히려 있는 집안은 동치미국냉면에 꾸미로 고기를 얹어 먹고, 없는 민초들은 동치미에 고기국물을 첨가해 먹었을 거란 추론이 가능하다. 상식에 근거해 여유 있는 집안에서 고기국물까지 탐하였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고기를 잡고 삶는 일은 모두 하인들의 몫. 그들이 고기에는 손을 못 대도 국물은 어느 정도 나눠 먹을 수있는 재량은 있었을 것이다. 이때 부자처럼 냉면에 고기를 얹어 먹지 못한 대신 고기국물을 동치미국물과 섞어 먹지 않았을까 싶다.

 

반대로 언제든 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재력가나 양반들은 굳이 냉면에까지 고기국물을 넣지는 않았을 터. 그들은 면 위에 꾸미로 고기를 얹어 먹었다. 이런 근거는 한 나라의 왕도 고기국물 대신 동치미냉면을 즐겼다는 데에서 찾는다.

 

고종이 즐기던 냉면은 꾸미로 가운데에 열십자로 편육을 얹고 나머지 빈곳에는 배와 잣을 덮었다. 냉면사리는 대한문 밖의 국숫집에서 사다가 썼으며, 배는 칼로 썰지 않고 반드시 수저로 얇게 저며 얹었고, 동치미국은 배를 많이 넣고 담가 무척 달고 시원했다고 고종의 총애를 받던 삼축당이 전한다.(한복진 저 우리가정말알아야할 우리음식백가지)


냉면을 동치미국물에 말았다는 사실은 한국정통요리연구가인 고 강인회 선생의 ‘한국의 맛’에도 기록되어 있다.

 

평안도는 산세와 같이 대륙적이고 진취적이며, 음식의 솜씨도 풍성하고 대륙적이다. 특히, 겨울에 먹는 음식이 다른 지방보다 발달되어 있다. 음식 중에서 국수를 가장 즐겨 먹고, 겨울에는 냉면, 여름에는 어복쟁반이라는 뜨거운 음식을 먹는다. 냉면은 동치미국물에 말고 꿩탕에도 만다. (강인회 저 한국의 맛)

 

우래옥보다 반세기나 앞서 문을 열었던 명월관(구한말 궁중의 음식 책임자였던 조순환이 조리사와 기생을 모아서 세종로 동아일보사 자리에 차린 고급 요정)의 냉면도 동치미국을 사용했다고 ‘부인필지’는 적고 있다.

 

‘부인필지’에 나오는 명월관 냉면은 동치미국에 국수를 말고 무와 배, 유자를 얇게 저며 넣고, 제육을 썰어 넣고 달걀을 부쳐 채 썰어 넣고, 후추, 배, 잣을 넣는다. 고 하였다. (한복진 저 우리가정말알아야할 우리음식백가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에 앞서 만들어진 냉면들은 모두 동치미국물을 사용하거나 고기국물을 가미한 냉면이었음을 알 수 있다. 냉면의 발달 과정을 보면 치미= 동치미+육수= 육수 순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고기국물냉면 이전에 동치미냉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동치미냉면이 고기국물냉면으로 변하게 되었을까?

 

냉면은 겨울철에 즐기던 음식이다. 우리의 세시풍속기인 ‘동국세시기’ (1849년)에서도 겨울철 시식으로 냉면을 들고 있다. 그런데 과거에서 현대로 또 북에서 남으로 넘어오면서 여름철 음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육수의 성질도 바뀌지 않았나 싶다.

 

여름철에 다량의 동치미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관리도 까다로울 뿐 아니라 맛도 일정하지 않다. 아무리 잘 담가도 겨울철 동치미보다 맛있지는 않았으리라. 때문에 손쉽게 장만할 수 있는 고기국물로 대체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정통냉면 남포면옥

 

 

면과 꾸미가 분리되어 있다. 맛객은 면의 향과 식감을 즐기기 위해 면 따로 꾸미 따로 먹는다.

정석이라기보다 맛객의 식성이니 따라할 것 까진 없다. 다른 집과 달리 동치미국 함량이 높다보니 감미롭다.

 

 

냉면명가치고 호부(好否)가 없진 않다. 남포면옥 역시 맛에 대해 말들이 많다. 대개 고기국물냉면을 쳐주는 사람들이 불만족스러워 하는 분위기이다. 또 여름철에 맛 본이들이 만족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맛객이 여름철에 맛보지는 않아 뭐라 장담은 못한다.

 

단, 동치미 특성상 관리나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맛이 일정하지 않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겨울철 동치미 맛은 대체적으로 일정한 편이다. 거기에 무맛도 좋다. 남포면옥 냉면의 진수를 만끽하고자 한다면 겨울철이 적기이다.

 

남포면옥은 여러 냉면명가 중에서 동치미 함량이 가장 높은 집이다. 그렇기에 다른 명가에 비해 냉면의 본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기국물을 정통으로 치는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정통냉면은 고기국물 냉면일까? 아니면 동치미국물 냉면일까? (2008.1.28 맛객) 

 

옥호: 남포면옥

전화: 02) 777-2269, 757-2269

주소: 서울시 중구 다동 125

메뉴: 냉면 7,000원

출처 : 맛있는 인생
글쓴이 : 맛객 원글보기
메모 :